김대경 (전)아시아개발은행 선임에너지전문가
에너지전환과 에너지저장
ESS는 ‘에너지전환을 위한 성배’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에서 저장이 없는 시스템은 효율이 낮다. 따라서 저장이 가능한 시스템은 다양한 저장장치를 갖추고, 원천적으로 저장이 어려운 시스템은 다양한 재고 관리 방안을 수립하는 등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데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UN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3가지가 물(Water), 음식(Food) 그리고 에너지(Energy)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중 물과 음식의 경우 다양한 저장장치를 갖추고 있으나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저장장치가 발전하지 못했다.
물의 경우 생활 가까이에는 생수를 담는 용기에서부터 옥상 물탱크, 각종 저수지, 댐 등 다양한 저장장치를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러한 저장장치가 없었다면 인류는 상당 부분의 물을 사용하지 못한 채 흘려 보내고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을 것이다.
음식의 경우에도 가정용 냉장고에서부터 업소용 냉장고, 상업용 냉장고, 냉동창고 등 다양한 저장 장치가 있다.
이들을 저장하지 못했다면 물 부족과 음식물의 부패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발생했을 것이다.
에너지의 경우 저장이 어려워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필요 이상의 발전소를 짓는 일이다. 예를 들어 소비하는 전력은 하루 중 기저부하(Baseload)부터 최대부하(Peak Load)까지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발전소는 최대부하를 담당하고도 여유가 있는 정도의 용량으로 건설해야 한다. 이 것은 기저부하 시간대에는 운전하지 않고 정지되어 있는 발전소가 많이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때때로 정지해 있는 발전소가 많다는 것은 전체 시스템의 효율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에너지저장 장치를 적용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에너지부문에 저장장치를 적용하지 못했던 것은 대용량 에너지저장에 대한 기술적인 어려움과 막대한 소요 경비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9년 현재 에너지저장 장치의 가격은 $156/kWh까지 하락하였으며, GW급 대용량 에너지저장 기술도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이는 대용량 에너지저장이 상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수준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에너지전환은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너지전환에 따른 미래 전력시스템은 공급 측면에서의 다이나믹(Dynamic)과 수요 측면에서의 다이나믹이 동반 증가하기 때문이다.
즉, 공급 측면에서는 출력의 변동이 있는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증가하고, 수요 측면에서는 전기자동차와 같은 변동성이 높은 분산자원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러한 시스템의 변동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유연성(Flexibility)이라고 하며, 미래 전력시스템에서 유연성의 확보는 필수불가결한 핵심사항이다.
시스템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해법으로는 ▲공급 유연성 (Supply-Side Flexibility): 유연 발전 ▲수요 유연성 (Demand-Side Flexibility): 수요반응 ▲그리드 유연성 (Grid Flexibility): 계통 연계 ▲시스템 차원 저장 유연성 (System-Wide Storage Flexibility): 에너지저장 등과 같은 방법이 있다.
에너지저장시스템은 시스템 차원의 유연성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유연성 자원 중에서 유일하게 공급과 수요의 양쪽을 모두 담당할 수 있는 자원이자 출력의 가감 신호에 가장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저장시스템은 충전과 방전을 통해 수요자원과 공급자원의 두가지 역할을 할 수 있고, 수 msec 이내에 원하는 출력을 낼 수 있는 자원이다.
이와 관련 에너지저장시스템은 에너지부문의 효율향상 뿐만 아니라 에너지전환에 없어서는 안 될 자원으로서 ‘에너지전환을 위한 성배(The Holy Grail)’로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 이래 에너지저장시스템 보급에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30여 차례의 화재사고 이후 에너지저장시스템의 보급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2018년 1.0GW → 2019년 0.6GW, IEA), 올해 상반기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전은 최근 전력계통 안정과 동‧서해안 발전제약 완화를 위해 1.4GW 규모의 에너지저장시스템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발맞춰 산업계는 에너지저장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고, 정부는 정책과 금융 차원에서 산업계를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도출함으로써 글로벌 선도국의 지위를 지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전기신문 : 2020년 09월 28일(월) http://electimes.com